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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숲

아비히메/7월 7일 본문

꿈왕국/아비히메

아비히메/7월 7일

안개고양이 2019. 7. 7. 00:00

Photo by Jonas Verstuyft on Unsplash

"너는 별을 보자며 내 손을 끌어서  
저녁노을이 진 옥상에 걸터앉아"  
*해당 곡의 일부 가사 및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첨부.

 



언제나처럼 하늘이 알록달록한 저녁이다. 불어오는 바람은 미적지근하고, 빛 공해로 온통 밝은 지상 탓에 산 너머로 사라지는 햇빛의 끄트머리를 물고 늘어진 남색 밤하늘에도 어느 별 하나 얼굴을 내밀어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별을 보여줄게." 

오늘은 대기먼지가 많았던 걸까. 상념의 원인, 유독 짙은 노을이 산등성을 따라 타오르듯 빛났다. 덕분에 온전히 같은 색이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햇살에 투영되던 누군가의 붉은 머리가 불현듯 떠오르고 만다. 그래서 이 노을은 차라리 다정하던 목소리를 더 닮아있다. "꿈"세계였던 탓인지, 벌써부터 흐릿한 인상을 애써 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하고 마는 이름을 삼킨다. 유메는 목에 걸린 반지를 두어 번 쓰다듬다 멍한 시선을 돌려 집으로 발을 옮겼다. 낮의 맹렬한 햇살에도 채 마르지 않은 공기가, 지나치게 눅눅한 저녁이다. 



계기랄게 없었다.

그저 언제나처럼 서정적인 밤이 다가오는 바람에 다소간 평범한 생각이 번졌을 뿐이다. 나비의 말대로 본래 유메는 꿈 세계 태생의 사람이고, 현실 세계는 잠깐 몸을 의탁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생의 반 이상을 현실에서 보낸 유메에게 있어선 꿈 세계보다 현실이 더 제 고향에 가까웠다. 그래서 늘 마음 한편에 사소한 그리움을 켜켜이 쌓아두고는 했다. 그 탓일까. 꿈 세계에서 만난 인연도, 기억도 소중히 여겼을 텐데. 잠이 들기 전 딱 한 번만 더 돌아가고 싶단 가정 따위야 조금 정도는 허락해주어도 되지 않는가. 그게 뭐 그리 대단했다고.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유메의 몸은 더 이상 꿈 세계에 있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유메가 어제도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일상적인 반응에, 차라리 꿈 세계가 거짓말이라는 게 더 맞는 것 같아 유메는 혼란해졌다.

어쩌면 꿈 세계가 정말 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는지 모를 일이었다. 
유메는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살아온 세월이 습관을 만들어 금방 본래의 일상생활을 이어나갔다. 평소같지 않은데 평소처럼 직장을 다니고 사람과 소통하고 매체를 접했다. 모든 게 위화감이 들만치 정상이었다. 유메에게 있어 놀랄 일이라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척 허하다. 
마음의 공허가 좀처럼 사라지질 않아 부러 일에 몰두했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생각과 제 마음에 벽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반으로 뚝 잘라 벽을 만든다는 건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다. 유메는 모든 몰두 방식을 실패하고 말았다. 매일 이유 없는 갈증에 시달려 물을 들이켜도 해갈되지 않아 고통스러운 공허감이 지속되었다.

말하는 인형도, 왕자도, 꾸물거리며 위협하는 형체 없는 괴물도. 마법도 싸움도 없는 세계. 더 이상 놀랄 필요가 없는데, 유메는 매일 같이 그 모든 게 아, 그래. 그리워졌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감정이 그리움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꿈 세계는, 꿈일 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유메의 내외면을 모두 침식해갔다. 심신이 자꾸만 지쳐 눈에 띄게 기력이 없었다. 기억은 조금씩 더 흐릿해져 가는데 그리움은 조금도 흐릿해지지 않았다.
이유 없이 화려한 그 세계의 풍경 속에서 홀로 독보적인 붉음을 지니던 사람. 아비, 너는 왜 하필 그렇게 붉은색 일색이었을까. 네가 특히나 잊히지 않아서 괴로워. 유메는 떨어지는 눈물을 떨어지도록 그대로 두었다. 눈물이 눈을 흐리면, 떨어지기 전에는 아비의 형체를 눈 앞에 상상하는 게 가능했다. 붉은색만 눈에 보이면 모든 꿈 중에서 유일하게 흩어지지 않는 기억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오늘은 꿈을 꿀 수 있을까. 잠깐의 꿈이어도 좋으니 조금 더 긴 잠을 청하려 눈을 감는다. 한 조각의 희망마저 한참 모자라 유메는 오늘도 그저 허덕이기로 했다.



일상을 잘 살아오는 것 같다가도 한 번씩 마음이 옥죄어 숨쉬기가 힘들다. 고통 끝에 사람은 보통 지푸라기를 잡는 법이다. 그리고 대개 약하고 덧없는 희망들이 그 지푸라기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그만큼 절박한 심정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7월 6일.

유메는 직장 동료가 칠석에 축제가 있다고 웃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불꽃놀이를 언급하며 수척한 유메에게 반응을 얻으려 했지만, 유메는 불꽃보다는 별이 더 보고 싶었다. 어떤 거라도 좋으니 생기를 되찾아봐. 동료가 웃으며 등을 떠밀어주어 유메는 이틀 간의 휴가를 얻었다. 자연스럽게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비의 영향이 컸으리라.   

아비는 자주 알스토리아의 별을 이야기하곤 했다. 유메 역시 알스토리아에 잠깐 머물렀을 당시 보았던 밤하늘을 똑똑히 기억했다. 도시의 밤하늘과는 확연히 다른 빛에 유메는 순식간에 압도되어있었다. 어쩌면 아비는 그 모습을 기억하고 꾸준히 제안해왔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영향인지 아비는 무뚝뚝한 척을 하면서도 꽃이나 별처럼 섬세한 면모를 보이곤 했다. 그래서 아비에게도 유메에게도, 별은 다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 번 오작교를 통해 만날 수 있는 날이다. 차원이 다른 문제임을 자각하면서도 칠석에 얽히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허무맹랑해도 시도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그마저도 시도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날, 유메는 천문대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만나고 싶어. 
하지만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유메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가능성조차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유메는 너무 지쳐있었다. 



정확한 건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표를 끊어 전철을 탔다. 대충 위치만 알아두었던 천문대에 도착했는데 아무래도 생각보다 유명한 장소인 모양이다. 게다가 칠석에 별을 보러 온건 유메뿐이 아니었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한산할 것을 기대했는데 사람들로 제법 발 디딜 틈이 없다.
입장권을 끊어도 아직 완전히 어둡지 않은 시각이라, 유메는 천문대 안 자판기에서 커피를 하나 뽑아 들고 주변 벤치에 앉았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마음 한편에 안도감이 들었다. 만약에 아비를 만나지 못하게 되어도, 주변에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까 어떻게든 될 것이다. 슬프게도, 다소 허무맹랑한 희망은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현실감각에 의해 조금 무뎌져 있다. 만나지 못해도 괜찮아. 스스로 생각하기도 마음이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서, 어쩌면 이대로 완전히 묻어두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해가 한 번 지기 시작하면 그 후부턴 막을 새도 없이 빠르게 사라져 간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입장해 별을 관찰하고 내려왔다. 유메는 부러 줄의 맨 끝에 서서 숨을 몰아내 쉬었다. 선선해진 여름밤 공기가 어깨를 무겁게 했다. 

"걸쳐." 

갑자기 긴장한 어깨에 무게가 걸린다. 느껴지는 부드러운 옷에 유메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아무리 그래도 밤에는 쌀쌀하다고 했잖아." 
"아, " 
"얼마간 못 봤다고 내 말도 잊은 거야?"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면 변함없이 웃는 얼굴이 있다. 아니, 변했나. 조금 야윈 것도 같다. 제대로 웃는다기에는 평소보다 이상한 얼굴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리움을 못 이겨 수도 없이 상상했던 아비의 웃는 얼굴이 거기에 있다. 유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이 탁 막혀 말을 할 수 없었음이 더 정확할 것이다. 눈물이 맺히고 떨어지는데도 아비의 붉은 머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아비." 
"약속, 지키려고."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아비의 목소리도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 

"아비." 
"응." 
"늦었어." 
"그랬나, 미안." 

오랜만에 만나면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너무 그리웠던 탓인지 나오는 게 이름뿐이다. 마음이 서러워 차라리 펑펑 울고 싶다. 메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마른 우물이었던 모양이다.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벅차서 유메는 숨을 한 번 삼켰다. 사소한 움직임에도 눈물이 방울방울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아비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따뜻하지만 분명하게 떨리는 손. 뺨에 와 닿는 공기가 자꾸만 마음을 흔들었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다.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전하고 싶은 말은,

"보고 싶었어."

동시에 뱉은 말이 공중에 맞닿더니 별이 된다. 그러고 보니 아비가 말을 걸어준 순간부터 주변이 온통 별 투성이다. 다시 한번 주의 깊게 둘러보면 알스토리아의 밤하늘. 언제부터 여기에 서있었던 걸까. 머리 위부터 주변까지 그토록 보고 싶던 별이 한가득이다. 워낙 집중한 탓인지 별들이 아비를 기준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다. 잔뜩 울어 어지러운 머리도, 눈에 잔뜩 고인 눈물도 힘써 유메의 시선을 교란했다. 눈 앞이 찬란한 것 투성이야. 유메는 그제야 조금 웃을 수 있었다.

"아비."  
"응."  
"다녀왔어."  
"어서와."
"······사랑해."

예전엔 수줍음을 못 이겨 제대로 뱉지 못했던 것 같은데. 쌓아온 경험이 괴로워 당장 표현하고 싶었다. 아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얼굴이 다가오더니 입술이 닿았다. 아직 감지 못한 눈에 아비의 붉은색 속눈썹이 들어왔다. 눈을 감으면 사라질 것 같아 버티고 있으면 아비가 슬쩍 눈을 뜨더니 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을 감아도 조심스럽게 닿은 감촉이 생생했다. 유메는 곧 아비의 목에 제 팔을 둘렀다. 머리보다 느린 몸이 그제야 안정감을 기억하고 차차 떨림을 멈추었다.

유메 어깨에 걸쳐진 붉은 재킷이 밤바람에 조금씩 살랑대었다. 푸르고 맑은 세상에 유독 붉은 사람이 하나, 그리고 이제는 둘. 견우와 직녀, 칠석의 기적이라고 칭하기에는 다소 애달픈 날이다. 다만 견우와 직녀완 다르게 하나가 되어버린 연인은 더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확신을 발하는 별이 머리 위로 잔뜩 빛을 흩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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